외국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도쿄에서 개발자로 일한지 5년차.
그 중 2년 정도는 한국인들과 일했으니 실질적으로 '외국' 회사에서 일한지는 2~3년이 되었다.
개발자에게 해외 취업의 끝판왕(?)인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는 '로망'인 해외에서 일하는 개발자라(물론 코로나19 이후로는 그런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았지만) 이런저런 질문도 받지만,
사실 여전히 특별하다는 것보다는 불편함이 많다. 특히 의사소통...
위에서 말한 2,3년 동안 두 회사에서 일했는데, 첫 번째 회사는 '영어가 허용되는' 일본 회사였고, 지금 회사는 핵심 인원들을 포함한 절반 이상의 직원이 외국 국적을 가졌고, 소통의 70~80%가 영어로 이루어지는 일본 회사다.
첫 번째 회사의 경우 영어로 소통이 되긴 했지만 어쨌든 일본인의 비중이 훨씬 많았고 중요한 문서조차 일본어로만 작성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어서 나를 비롯한 외국인 개발자들은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서 일해야 했고, 결국 내가 떠나기 전 상당수 외국 개발자들이 이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떠난 건 언어의 문제보다는 회사 방향 전환으로 인한 것이 더 컸지만...
- AI회사에 B2B 웹 어플리케이션 개발로 채용되었는데 이 부서가 사라지고 딥러닝 모듈 개발로 메인 사업이 전환됨.
- 일부 팀원들은 떠나고 일부 팀원들은 딥러닝 쪽으로 이동함.
어쨌든 일본어의 부족함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긴 했다.
두 번째 회사, 그러니까 지금 회사의 경우는 외국인(일본인 관점의)의 비중이 더 많고, 핵심 멤버 상당수도 외국인(내 상사는 중국인, 내 상사의 상사도 중국인, 내 상사의 상사의 상사는 인도인...)이라 첫 번째 회사보다는 좀 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외국 회사'의 느낌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불편한 점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업무 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무처리와 관련된 이야기, 예를 들자면 연말정산, 보험처리, 건강검진 등의 이야기까지 전부 영어로 이해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좀 압박이다. 개발자라면 대부분 영어와 친숙하지만 그 영어의 대부분은 프로그래밍이나 시스템과 관련된, 흔히 얘기하는 '개발자 영어'인데, 업무 외적인 부분의 영어들까지 친숙해져야 하는 건 쉽지 않다. 특히 한국말로 들어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세금 이야기, 보험 이야기 등은 더더욱 그렇다.
또 하나는 불편한 점이라기보다는 성향 차이인데, 자기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할 필요가 있다.
정치질을 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업무 이외에 회사에 기여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를 채용한 것이 회사에 이득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개발자의 입장에서 예를 들면, 개발 프로젝트의 개선안을 공유하거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프레임워크나 툴을 공유/개발하거나, 새로운 서비스의 데모를 개발해서 소개한다거나 등...가끔씩은 이게 너무 치열해 져서 어떻게든 개선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주말에도 세미나를 찾아다니고 공부를 이어가는데, 이런 게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매우 피곤할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접고 들어간다면 좋은 점도 많다.
- 능력/성과 우선주의에,
- 회사가 정말로 개발자를 중시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던가,
- 연차는 정해진 범위 안에서라면 진짜로 내 맘대로 쓴다거나,
- 상사가 정말로 매니저에 가까운 역할이라, 윗사람 눈치 보듯이 할 필요가 없다거나,
- 무조건 다 같이 밥을 먹을 필요가 없다던가,
- 나이에 상하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거나(이건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듯)
등등.
하지만 최근 한국 테크기업의 기술 블로그들을 보면 한국의 회사들도 외국의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듯한 모습이 보여서, 이제 이런 모습이 언제까지나 외국 기업만의 장점이 될 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와서 프로그래머로 일한다면 그런 걸 정리할 기회도 있겠지.